건축학개론

지난주 일요일날 건축학개론을 봤다.

워낙에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추천을 했던지라, 궁금해서 보고싶었다.

특히 그 영화를 보고 며칠동안 멍때리던 남성분들을 보면서, '대체 어떻길래'라는 의문이 들었던 것이 컸으리라.

 

대학동기이자 베프인 깽양과 함께 일요일 저녁에 건축학개론을 봤다.

영화가 끝난 후, 우리는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옆에 친구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나는 허한 마음에 다리가 풀려 영화관을 채우는 "기억의 습작"에 빠져있었다.

우리는 영화관에서 나와 조용히 우리 대학교 주변 맥주집에 들어갔다.

주문을 하고 맥주가 나올 때까지 서로 말을 하지 않았다.

맥주를 한모금씩 들이킨 후에 말을 꺼냈다.

 

 

이 영화에 대해 많은 말들이 이미 나왔기 때문에 길게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남성의 시각에서 서술된 멜로이자, 한국영화계에서 보기 드문 멜로물의 흥행, 80년대가 아닌 90년대를 이야기하면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영화 등등 건축학개론에 뒤따르는 많은 수식어들이 있다. 다 동의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영화의 분석이 아니라 단순한 감상일뿐이다.

영화에는 20살의 찌질함, 내지는 순수함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아한다는 마음을 전하지 못하고, 그 사람이 그냥 내 곁에 있어준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던 그 때.

'사귄다'라는 규정이 없어도 그냥 둘이 마음 맞아 함께 할 수 있던 그 때.

상대의 사소한 몸짓, 말투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했던 그 때.

이제는 그럴 수 없다는 사실에 아쉬움이 남았다.

왜 그럴 수 없는가.

나이를 먹으면 이미 사랑이 코드화되어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코드대로 움직여야 사랑이 전달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영화 속에서 첫눈이 오면 그 때 만나자는 말이 사랑고백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남자주인공의 순수함은 나이가 먹으면 통용되지 않는다.

나이를 먹으면 "라면 하나 먹고 갈래요?"라는 말이 말그대로 라면 하나 먹고 가라는 말이 아님을 깨닫기 때문이다.

사랑은, 연애는 코드화 되어 20대 후반이 되면 그 코드 속에서 움직이고 살아가게 된다.

소위 말하는 '밀당'이라는 것도 그 일환이 아니던가.

 

또 하나의 감상: 풋풋한 첫사랑에는 시대를 막론하고 같은 것들이 있는가보다.

예를 들어 좋은 노래 한 곡을 서로 추천해가며 같이 듣는 것.

상대방이 좋다는 노래를 외우다시피 들으며 그 사람의 감성을 공유한다는 느낌에 젖을 수 있었다.

이뿐만일까.

잠에 든 상대방에게 몰래 입을 맞추는 것.

그 이상을 원하지 않으면서 순수하게 그 행위 자체로 짜릿했던 그 때....

 

 

대학시절 자주 다녔던 맥주집에서 친구와 맥주를 마시며 주위를 둘러보니 추억거리가 잔뜩했다.

내가 앉았던 옆테이블은 그 사람의 첫사랑 이야기를 듣던 곳이고,

그 옆에는 그 사람과 멀어진 후 여러명이서 단체로 앉아 새우깡을 먹던 곳이고,

한 번은 거기서 싸우고 나와 길거리에서 서로가 걱정되어 상대방 집 앞에서 서로를 기다리다가 길이 엇갈려 몇시간을 길바닥에서 서성거렸던 적도 있고..

 

 

누구에게나 첫사랑은 있을 것이다.

그 모든 사람들의 공감대를 시기적절하게 찌른 영화, 건축학개론.

보는 이들의 머리 속에 "기억의 습작"을 각인시켰으리라.

 

-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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